부평에서 나고 자랐지만 평리단길이란 말은 처음 들어봤다. 이태원의 경리단길에 부평이란 지명을 붙여서 만든 말인 듯한데.. 평리단길을 소개한 부평문화재단 박옥진대표님의 신년 인터뷰를 보고 ‘이런게 있었나’ 싶었다. 거기 있다는 중화요리집 ‘복화루’도 그렇고... 70년이 넘은 맛집이라는데 나는 들어본 적도 없다.
문화재단 후원회밴드에 올라온 박대표님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카톡방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답글을 달았는데 점점 가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져서 그대로 번개가 잡혔다. 결국 그날 점심에 시간이 되는 문화재단 운영위원들이 모여서 복화루의 대표메뉴라는 양장피와 전가복을 먹으면서 담소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다들 부평에 평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리가 생겼고 그것도 누가 일부러 조성한 것도 아니지만 가로수길이나 경리단길처럼 지역의 명물로 성장할 수 있는 문화의 거리가 생겼다는 것에 대해 반가워했다. 평리단길이 더 활성화되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길 기원하는 마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 구청 문화국장님이 발전방향을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가 ‘관은 간섭하지 않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좌중의 농담 섞인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물론 국가나 지자체가 문화에 간섭하는 것은 일단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문화에 관한 한 정부는 기본적으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원칙과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하면 다 잘되는 것일까.
그동안 문화의 거리로 알려져 명물이 된 골목길들이 많이 있다. 신촌, 이대, 홍대, 북촌, 가로수길 등등... 가만히 돌이켜보면 다들 비슷한 이력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저렴하면서도 신선한 이미지로 젊은 층의 시선을 끌다가 점점 사람이 모일수록 임대료가 올라가서 종당에는 원래의 개척자들이 밀려나고 치솟은 물가를 감당하기 어려운 젊은 소비층들도 떠나면서 상권 자체가 다른 지역, 다른 골목으로 옮겨가는 현상. 신촌에서 홍대로, 홍대에서 연남동으로, 삼청동에서 서촌으로, 이태원에서 경리단길로... 이제는 아주 익숙한 풍경이 되어 버린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현상이다. 어찌보면 도심 곳곳이 돌아가면서 개발되는 좋은 현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역기반의 문화공동체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 전국 곳곳에 ‘~리단길’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리들이 우후죽순 생겨난다고 한다. 뭐 하나 히트 좀 쳤다싶으면 모두 따라 하기 바쁜 한국적 풍경이다. 예전 경리단길이 아직 세간에 널리 알려지기 이전에 그 쪽에 갈 일이 좀 있었다. 친구가 녹사평역 근처에 살았기 때문인데 미국인이 운영하는 수제버거집과 하우스 맥주집,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아담한 찻집 몇 개가 전통시장과 공존하는 나름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거기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아마 이국적인 풍경이면서도 이태원역 부근과는 또 다른 덜 상업화된 오붓함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평리단길과 경리단길은 이름만 비슷한 게 아니라 나름 몇 가지 유사점을 더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미군부대와의 지역적 연관성, 전통시장과의 공존, 주변 다운타운 지역과의 감성적 이질성 등...
경리단길이 전국적 명소로 이름나게 된 이면에는 그곳에서 시작된 수제맥주(Craft Beer)의 전국적 유행이라는 문화적 현상이 있다. 이제는 어디가나 볼 수 있는 수제맥주의 원조로서 경리단길은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어떤 거리가 무슨 이름이 붙었던 간에 경리단길처럼 독자적인 정체성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지속력이 있을 것이다. 그럼 평리단길은 어떤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까.
서울의 위성도시이면서 국내 최대의 공단지역 중 하나였던 부평. 참 삭막한 도시였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시에 속해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분리된 별개의 지역... 문화적으로는 콘서트홀은커녕 소극장 하나 없이 공보관 하나로 모든 행사를 치루는 메마른 소도시. 그게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부평이다. 그런데 요즘 부평이 ‘음악도시’ 조성사업을 한다고 한다. 예전 부평에 미군부대가 있던 당시(이때가 한국 대중음악의 태동기였음)에 부평지역 음악인들이 미군부대 부근 클럽을 중심으로 큰 역할을 했음을 내세우면서 K-pop의 메카가 되어보겠다는 포부다. 글쎄... 우리 집이 그 당시 미군부대 근처에서 미군 전용 클럽을 했었는데 어릴 적 기억에 맨 날 전축만 틀어댔지 가수 얼굴은 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하긴 밤업소 숫자에 비해 뮤지션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은 했었다. 아무튼 여하간에 음악도시사업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부평이라는 문화적 사막지대에서 살아온 갈증과 회한 때문에 특히 더 잘되었으면 좋겠다.
구청에서는 한국대중음악자료원이나 대중음악 명예의 전당을 유치했다고 열심히 광고 중이지만 음악도시는 그 같은 시설의 유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문화’가 지역을 기반으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명실상부한 음악도시가 되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평리단길 같은 자생적 문화의 거리가 가지는 의미는 가볍지 않다. 잘 만 된다면 평리단길이 음악도시의 커다란 자양분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평리단길이 단순한 먹자골목이 아닌 예술가들의 거리가 되어야 한다. 신촌이나 홍대 앞이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많은 경우에 예술가들이 가게를 내는 것은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예술과 생계가 양립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눈물을 머금고 예술을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더욱 그렇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의 생활이 안정되어야 지역문화가 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다. 지자체나 주변 상인들이 사람 모으려고 거리공연팀을 동원하는 등의 방식으로는 안되는 일이다. 평리단길 바로 옆의 큰길(구 명신당 앞길)에 도로를 막고 덮어서 거리를 조성하고 ‘문화의 거리’라는 간판까지 내걸었지만 아직도 그 거리에 지역적으로 뿌리내린 문화적 정체성은 없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공식대로라면 평리단길이 지금은 아기자기한 커피숍과 음식점들이 자리잡고 이름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는 단계이지만 조금 더 성장하면 임대료가 치솟을 것이고 나중에는 별다방, 콩다방 등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전국 어디나 똑 같은 모습의 소비천국으로 변하면서 주변에 이미 존재하는 거대한 ‘소비의 거리’에 무력하게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은 뭘까? 임대료가 치솟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생각하기 쉽다. 임차인의 수입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임대인도 임대료를 올릴 것이 당연하니까. 하지만 임대인이 개척자인 임차인을 내쫒으면서 원하는 수준의 임대료를 챙길 수 있는 것은 그 만큼의 임대료를 낼 수 있는 대규모의 자본이 유입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부 주민들은 지역경제의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이런 것을 오히려 원할 수도 있겠으나 그 결과 거리는 대기업의 프랜차이즈와 직영점으로 가득차고 자생적 문화공동체는 해체의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칼하지만 이런 과정의 끝은 지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지역 경제의 붕괴로 이어진다. 신촌이나 이대가 그랬고 지금은 홍대 지역도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 이상 사람들이 먼데서 일부러 찾아 올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모처럼 평리단길이라는 것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서 너무 생각이 앞서 나간 듯도 하지만 뭔가를 의미있게 조성하려면 초반부터 생각을 잘 해야 한다. 평리단길은 현재 맛 집 몇 개가 소문나면서 젊은 층들이 조금씩 모여드는 형성 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왕 그런 것이 자리를 잡아 간다면 지역주민으로서 한번 쯤 그 방향과 의미에 관해서 고민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부평이 음악도시로서의 발전을 고민하고 있다면 평리단길 같은 거리가 잠깐 반짝했다가 주변 상업지역과 통합되어 그저 그런 먹자골목으로 남는 것보다는 지속력을 가진 문화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평리단길이 대자본의 분탕질에 휩쓸리지 말고 부평의 문화적 자양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려면 지역 주민과 지자체 모두의 선제적 관심과 적절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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